이 달의 글
Dear my youth,
-밝게 빛나던 젊은 날을 대변하던 파리는 이제 볼 수 없어도.
스물넷, 물건을 잃을까 큰 배낭을 꼭 붙잡은 채 바라보던 에펠탑을 기억해. 너무 익숙하면서도 생경했던 철골 구조물은 시간에 따라 그 빛을 바꾸었고, 눈에 비치던 백색 에펠은 밝기만 하던 어릴적 추억 속에서 두근거리던 설렘으로 남아있어. 그렇게 화려했던 며칠간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이 도시를 그리워하게 만들었지.
이 도시를 사랑했던 것인지 그를 바라보던 모습을 추억했던 것인지, 조금 더 어른이 되어 돌아온 이 도시는 기억 속 하염없이 밝게 빛나던 모습만은 아니었어. 다만 겨울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도 잔잔한 재즈와 샹송이 울리는 거리를 걸으며 이 도시에 물들어가는 시간은 정각이 되면 빛나던 에펠탑의 시간과 같이 젊은 날 한 조각의 추억으로 남아두게 될거야.
시간이 지나 더 큰 어른이 되어도, 1800년 즈음 지어진 파란 건물 지붕과 베이지색 벽돌은 헤밍웨이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그대로 우리를 맞이할테야. 이 시간 그 길을 걷는 너와 나의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 처럼.

이 달의 플레이리스트
https://youtu.be/NzkW8V7HnWA?si=sQbpkyE1KTFmoda7
예전부터 좋아하던 스텔라장님의 샹송 플레이리스트를 자꾸 듣게되었다. 프랑스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건 역시나 스장님 노래인 것 같다.
#1. 파리에 가게된 이유

기나긴 출장이 끝났다.
다신 출장 안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프로젝트 책임자의 역할은 무거웠고, 매일 같이 야근에 찌들어 살면서 2024년을 보낼 준비따위는 하지 못한 채 급한 일정을 쳐내기 바빴다. 사실 긴 출장 뒤에 유럽에서 10일 간의 긴 휴가를 받는 것은 회사 동료 분들의 큰 배려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정이기도 하고, 출장 일정이 잡히지 않던 탓에 여름휴가를 아직까지도 쓰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유럽 여러 국가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다닐 생각은... 도저히 못하겠더라.
결국 출장을 보낸지 약 일주일 쯤 되던 때 파리로 전 일정 호텔을 예약했고, 그는 단연 최고의 선택이었다. (물론 후에 기술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2 억까 좀 제발 멈춰!!!!! - 파리에 가는 길
출장 가는 날 인천 공항 마비돼서 비행기 캔슬되고, 아울렛에서 차 털리고, 엄청 많은 일들이 벌어지던 때, 또 무슨 일이 벌어졌다. 분명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려고 노력하는 노력형 노홍철 스타일인 나도 이정도 억까에는 견뎌낼 방도가 없더라.
프랑스에 넘어가기 전 바로 국경에서 기차가 캔슬됐다. 출발 전에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 가다가 갑자기 캔슬됐다!!!......ㅠ 이놈의 도이치반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지....
옆에 앉은 프랑스인 여성분이 'This train is cancelled. we should leave now." 이러셔서 물음표 백만개 띄우고 좌절하던.. 모습이다.



결국 "MIDDLE OF NOWHERE" 역에 내려서 옆자리 프랑스 여성 분이랑 친해져서 몇시간 동안 줄 서면서 이야기 나누고 파리까지 같이 가기로 하였다.



결국 호텔을 하나 받고... 길거리를 걷다가 잤다. 사실 캔슬된건 황당했지만, 파리지앵의 삶을 느끼고 싶어 간 파리로 가는 길에 파리지앵 친구를 사귀게 되고, 너무 힘들었는데 호스텔 느낌의 한인 민박이 아니라 호텔에서 1박을 하게 된 것은 불행이 아니지 않았을까?


친해진 프랑스인 친구 Clot 과 같이 조식 먹고 열차를 타고 갔다. 이떄도 열심히 수다떨면서 왔다. (역시 프랑스 사람들은 ENFJ인 나와 매우 잘 맞아.) 오디오가 단 한번도 빌 새가 없었다.

열차 기다리고, 열차에 타서 테이블이 있는 식당 칸에 가서 DB에 환불 서류까지 같이 작성을 했다.


파리 동역에 도착해서 본 맑은 하늘과 프랑스식 건물을 보자마자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3. 수아레, 그리고 "파리의 날씨는 낭만."
겨울, 파리의 날씨는 항상 흐리지만 체감 온도는 낭만적이었다.
어렸을때는 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를 만나는것을 선호하기도 했고, 호텔에서 쉬는게 더 좋아진 나이가 된 지금, 무언가 모르게 수아레를 진행한다는 한인민박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4박을 예약했다. (물론 1박은 위에 기술한 사건으로 날려묵음..)
https://maps.app.goo.gl/ew8axA6MDqSuL7U3A
몽통통 파리 · 3 Rue Adrien Lejeune, 93170 Bagnolet, 프랑스
★★★★☆ · 숙박업소(B&B)
www.google.com
수아레. Soirée
밤에 하는 파티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파리지앵의 삶을 추구하며 이번 여행을 기획했기에, 이 수아레를 통해서 무언가 파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서 예약을 했었다. 밤 10시마다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준다고 하는데 이 한인 민박에서는 수아레를 밀고 나가는 듯 했다.



그 유명한 길에서 빵도 먹고, 보르도 와인이 만원도 안하는 이 도시에서 와인을 참을 수 없었다. 그냥 피곤하기만 한 하루였기에, 와인을 사서 일도 마무리하고 블로그도 쓸 요량으로 와인 한 병을 들고 일찍 집에 들어가 와인을 깠지...
근데 이게 시작이었다.




밤은 역시나 길었고, 수아레는 재미있었지. 이 날 완전 재미있었는데, 음식도 맛있었고, 20분이나 걸어가서 간 아이리시 펍은 안열었고... 한인민박집 옆 공원? 공터?에서 돗자리를 피고 내가 가져온 소주랑 잭다니엘을 깠다.ㅋㅋ 독일 출장때는 이게 그렇게 먹기 싫었는데 그리 맛있더라구! 결국 새벽 3시반?까지 술을 마셨다.ㅎ



그 다음날에도 펍 안열어서 간 무슨 약을빨것같은 분위기의 Circus????? 라고 쓰여있던 곳의 펍. 아무튼 뭔가 요상한 분위기였지만 친절했다.

조식도 미쳤고...아무튼 정말 너무 잘 고른 숙소였던 것 같다. 무언가 호텔을 잡았던 일주일도 행복했지만 그 행복 또한 여기서 파리의 첫 시작을 했기에 가능했던 행복감 같다. 이 곳, 너무 그리워 질 것 같다.

#4. 아니 저 오빠는 무슨 쇼핑을 저리 많이 해.ㅋㅋㅋㅋㅋㅋ
같은 한인 민박에 묵었던 친구들이 쇼핑에 미쳐있는 나를 보고 그랬다고 한다.ㅋㅋㅋㅋ 그럴만도 한게, 두 번째 파리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쇼핑이었고, 어쩌면 너무 갖고싶었던게 많았던 이십대 초반에 용돈과 알바로 온 파리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있는게 없었다.. 예전에 온 파리의 기억은 먹고 지내기 바빴던 시간이었기에 일을 하고 나름의 괜찮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되어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는 갖고싶은것은 죄다 사기로 결심하였다.
사실 이때를 위해 출장비까지 해서 거의 평달 월급의 2배를 받고 온 유럽이었지만 독일에서는 자린고비 생활을 하였다..ㅎ
1. 방브 벼룩시장





2. 라발레 빌리지










3. 아스티에 드 빌라트










4. Fluex/Merci












#5. 느좋같은 말을 쓰게 되.
처음에 뭐 𝙅𝙤𝙩? 이러고 🫢 한 표정으로 엥? 했는데 요새 애들 이런말 쓴대. 그래 나도 JMT 존맛탱 에바참치 이런거 그때 열심히 썼으니까 최대한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젠 나이 들어서 ‘~하게 되.’ 이런거 쓰면 “안돼. 하지마 그거 아니야.” 하고 아이들이게 혼 잔뜩 났다.
그래도 여행온 김에 안하는 거 해볼 순 있자나요?


#6. La 야바위꾼, Le 에펠탑 키링아저씨, Paris
결국 파리는 에펠에서 시작해서 에펠로 끝나는 거.
Bir hakeim 역에서 내리면 내리면 마르스 광장이 있는 에펠탑 바로 앞을 걸을 수 있고, Trocadero 역에서 내리면 에펠이 가장 잘 보이는 트로콰데로 광장에 내린다




여긴 마르스 광장 주변인데, 겨울 안개가 끼어 에펠은 잘 안보였어도 너무 예뻤다

다음은 되게 좋아하는 트로콰데로인데 에펠탑이 매우 잘 보이는 곳이라 대부분 이 곳에서 있었다. 물론 마르스 광장이 파리 올림픽과 공사 여파로 안열려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굳이굳이 찾아온 곳은 돌고돌아 트로콰데로였다. 낭만을 여기서 다시 찾아버린 느낌이었달까..

6. French가 최고야.
프랑스에 대한 아주 좋은 기억은 사실 크게 없었던 지난 여행과는 달리, 이번 파리가 좋았던 이유는 더 많은 취향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일것이다. Plat de jour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면 함바집에서나 볼법한 오늘의 메뉴는 에펠탑 거리 앞에서 낭만에 젖었고, 독일의 맛없는 음식의 느낌을 추억할 새도 없이 어딜가든 너무 맛있는 음식 뿐인 이 거리에서는 어쩌면 남도음식의 맛을 다시금 찾은 듯 입에 딱 맞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계속 생각나는 곳은 비스트로 빅토리였다. 가격도 가격이고, 특히 콩피가 정말 너어어어어무 맛있었다.
https://maps.app.goo.gl/AkFSsiaEqbm7YmZZA?g_st=com.google.maps.preview.copy
Bistrot Victoires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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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plat de jour 를 먹으러 다녔다. 개선문 앞에 있는 집에서 겨우 찾아서 비스크 소스와 닭고기 요리를 먹었다. 와 이거도 진짜 맛있더라 ㅜㅜㅜ 한번쯤 다시 해서 먹어보고 싶은 요리다. 특히 이 아래에 깔린 알덴테 식감의 밥이 그렇게 그립다 ㅜ
https://maps.app.goo.gl/AFPxoQCgkGXhpRCz9?g_st=com.google.maps.preview.copy
Le Comptoir de l'Arc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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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재형님이 추천해주신 비스트로에서 먹었던 푸아그라도 너무 기억에 남는다. 이 빵과 푸아그라 조합이 아직도 생생하다.
https://maps.app.goo.gl/SPcJDQqHSHkdWc4q8?g_st=com.google.maps.preview.copy
Bistrot Vivienne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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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아..
정말 이 바게트가 천 몇백원 밖에 안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주식이 빵인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안은 꾸덕하고 바깥은 바삭하고. 그리고 고소한 살짝 탄 느낌의 향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 프랑스 옆 나라 음식 먹기.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만난 Clot 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원래 프랑스 가정식 집에 가려했는데..
https://maps.app.goo.gl/7osgNhidwhw8LTAF8?g_st=com.google.maps.preview.copy
Bouillon République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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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가 잔뜩 내리는데도 웨이팅이 엄청났다..(심지어 이사람들 우산도 잘 안쓴다..)
그래서 그 옆에 이탈리안이 맛있는 곳이 있대서 먹기로 했다.
https://maps.app.goo.gl/X1XYCtL1UxbYyPFq8?g_st=com.google.maps.preview.copy
La Massara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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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이탈리아에서 먹은 것 정도로 맛있었고. 라자냐도 엄청났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람부르스코를 처음으로 경험해본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와인 카테고리 중에서 레드 스파클링은 생각을 못했는데, 레드로 만든 스파클링이 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여러번 먹었는데 이 맛이 아주 또 엄청나더라.

그리고 또 길빵하고..

또 길빵 하고..

아주 음식 엄청 먹고 다녔구나 ㅎ
7. 와인을 즐기게 된 이유
- 와인이란 카테고리는 딱히 내 눈에 들어오는 분야는 아니었다. 경험은 해봤지만 공부를 하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썩 끌리는 취미는 아니었고,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에 관심을 가졌던지라 와인은 아무래도 비싼 취미로 치부되곤 했다.
다만 프랑스에서 싼 가격에 좋은 와인을 즐기게 되고, 와인이라는 것이 다만 비싸기만 한 취미가 아닌 프랑스 그리고 유럽에서의 느긋함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으로 남게되자 왜인지 모르게 좋은 취미로서 인생에 안착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와인을 잘 알고 접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이 정말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와인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 마트에서 사온 8000원 짜리 와인. 비비노 평점 4.2 고 드라이하면서 부드러운 탄닌감까지 가진게.. 이 가격에 한국에 오면 무조건 데일리 와인으로 요긴하게 쓰일테다

- 까르푸 와인들.
마트에서도 아주 좋은 설렉션을 가지고 있다.
생떼밀리옹, 오메독 등 보르도 유명 생산지 와인부터 부르고뉴, 샹파뉴까지 아주 싼 가격에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었다.
파리 친구 클로의 말에 따르면 무조건 샤또가 붙어있고, 생떼밀리옹 지역 꺼가 개인적으로 맛있다고 해서 파리에섬 이거 위주로 마셨다.





그 중에서도 꺄브에서의 경험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정재형님의 유튜브에서 나온 곳이라 와인 한 병 먹어보고 싶어서 방문했는데, 여기에서 와인샵에서 추천해준 와인도 너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만난 손님 분이 와인 = 무조건 피노누아!! 라고 해서 와인 이야기도 얕지만 재미있게 했고, ‘프랑스에 사시는 분의 추천을 받고싶다‘라고 하니 데일리 와인도 선택해서 골라주셨던지라 너무 맛있게 먹었었다.
https://maps.app.goo.gl/yQoZjWG6EDXyGjteA?g_st=com.google.maps.preview.copy
Le Comptoir et les Caves Legrand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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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프레스티지를 타보았어요






























9. 끝맺으며.
사실 내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에 있다. 하지만 긴 출장이 끝나고 얻은 휴가 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바르셀로나나 여타 다른 도시가 아닌 파리에 10일이나 있었던 이유는 ‘지난 파리의 기억이 너무도 안좋아서.’ 라는 이유 단 하나였다.
2019년 당시 파리 시내에 오자마자 만난 소매치기, 지하철에선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고,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아서였는지 어린 내가 겪었던 파리는 “에펠탑.” 그저 한가지 철제 건축물이 주는 생경함과 압도감으로만 대체할 수 밖에 없었던 젊은 기억 중 최악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 너무 기대했던 파리가 준 배신감 때문이었는지 파리는 너무 별로고, 더럽기만 하다며 이 도시를 주변 사람들에게 욕하기도 했다.
무슨 기대감이고 무슨 낭만이었던 것일까. 유독 싫게만 느껴졌던 파리로 생각지 못하게 의도한 긴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 덕에 이젠 넓게만 느껴지던 아주 작은 20구 파리는 낭만과 행복이 가능했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미 삶 속에서 익숙해진 경험 속에서도 새로운 경험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든, 어떤 생각을 가지든, 어떤 시기의 스스로이든 지나가는 삶 속, 어떠한 타이밍에 새로움에 영감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젠 돌아보면 좋지 않았던 힘들었던 기억들도 성숙해진 스스로와 다시 올 좋은 시간의 교점을 기대하며 다시 경험해보려한다. 5년 전 불에 타서 무너진 기억뿐이었던 노틀담이 5년만에 열릴 때 다시 함께한 파리처럼.
